벗어날 수 없는 OTT 늪
구독 중인 서비스가 늘어갈수록 안온한 여가를 보장받는 기분보다는 거대한 데이터의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앞선다. 매달 결제되는 구독료는 입장료라기보다 선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일종의 통행료에 가깝다. 볼 것이 넘쳐나서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게 되는 역설. 소유하고 있으나 향유하지 못하는 이 기묘한 결핍은 우리를 풍요 속의 빈곤으로 몰아넣는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법한 것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며 친절을 베풀지만 그 실체는 내가 남긴 데이터의 파편들로 나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내가 봤던 것과 비슷한 것들만 되풀이되는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내 취향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틀 안에 고착되고 있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화면 속에 펼쳐진 수많은 썸네일은 어쩌면 나를 위해 최적화되어 조각된 환상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도 기이하게 변했다. 2배속과 건너뛰기가 일상이 되었고, 긴 호흡의 시리즈물은 주말 하루 만에 해치워야 하는 숙제처럼 소비된다. 서사의 여백이나 배우의 깊은 숨소리를 음미할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물론 몰아보기가 주는 쾌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말만 요약된 영상을 보고 작품 하나를 다 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 안의 진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진짜 이야기를 즐기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거대 자본이 몰리면서 화려한 스펙터클은 늘어났지만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경이로운 상상력이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질문 같은 진짜는 갈수록 찾기 힘들다. 덩치는 커졌으나 영혼은 가벼워진 콘텐츠들의 범람 속에서 취향의 갈증은 오히려 심해질 뿐이다.
플랫폼들이 제아무리 정교한 수식으로 나를 파악하려 들어도, 결국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록하는 주관의 힘이다. 수천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다 결국 오래된 영화를 다시 틀게 되는 이유가 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아무런 조작 없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롯이 견디며 펼쳐지는 서사를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이야기는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파편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지닌다.
내가 이곳에 멈추지 않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 역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내가 직접 부딪히고 느낀 감상을 남기는 것만이 단순히 소비되는 데이터로 전락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로그아웃 없는 항해처럼 쏟아지는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나는 나만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세상은 완벽하게 조작된 이미지로 가득 차 있지만 그 틈새를 파고들어 나만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나의 시선이다.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넘쳐나는 데이터 사이에서 내가 본 이야기를 남겨본다.
